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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거란의 대결: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

다수정보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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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거란의 대결: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 에 대해서 알아 봅니다.

 

고려와 거란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두 나라이다. 고려는 신라와 발해의 유산을 계승하고, 거란은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요나라를 세운 나라이다.

 

이 두 나라는 993년부터 1019년까지 세 번의 전쟁을 벌였다. 이 중 첫 번째 전쟁은 993년에 요나라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공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고, 이 전쟁이 고려와 거란,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겠다.

 

고려와 거란의 대결: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

고려와 거란의 대결: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

 

전쟁의 배경: 고려와 거란의 관계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고구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구려는 거란의 전신인 적란(赤狼)과 여러 번 전쟁을 벌였다. 고려가 건국된 후에도 거란과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926년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자, 고려 태조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거란을 '금수지국(禽獸之國)'이라고 비하하며 북진 정책을 추진했다.

 

942년에 요 태종이 낙타 50필을 보내자, 고려 태조는 사신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를 굶겨 죽였다. 이후에도 고려는 광군과 성을 갖추어 거란의 침입에 대비했다.

 

한편 거란은 916년에 야율아보기가 요나라를 건국하고, 중국 남부를 침략하려고 했다. 하지만 979년에 통일된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요 태종이 급사하면서 중국 남침에 실패했다.

 

요 성종이 즉위하자, 정치적으로 고립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려를 사대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986년에는 정안국을 멸망시키고, 991년에는 압록강 유역에 성을 쌓아 고려 침공을 준비했다.

 

전쟁의 과정: 소손녕의 침략과 고려의 저항

 

993년 10월, 요나라의 동경유수 소손녕이 약 8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이는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요나라의 국위를 세우려는 목적이었다. 소손녕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開京)을 향해 진격했다.

 

당시 고려의 성종은 소손녕의 침입을 듣고, 안북부까지 나아가 전선을 지휘했다.

 

고려의 군사들은 박양유와 서희 등을 중심으로 거란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고려군은 거란군의 엄청난 인력과 기병전에 밀려, 봉산군을 잃고 선봉장 윤서안이 포로가 되었다. 성종은 위기를 느껴 서경(西京)으로 후퇴했다. 조정에서는 이몽전을 청화사로 파견하여 거란과의 화해를 타진했다. 하지만 소손녕은 고려의 항복을 요구할 뿐이었다.

 

고려 조정에서는 거란과의 화해를 위해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넘기고, 국왕이 친히 항복을 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할지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희와 이지백 등은 거란에게 굴복하지 말고, 항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항전론이라고 한다. 성종은 항전론을 수용하고, 서희를 급파하여 거란과의 협상을 진행했다.

 

전쟁의 결과: 고려와 거란의 화해와 영토 확장

 

서희는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고려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소손녕은 고려가 신라의 후예이고, 고구려의 땅을 침략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고려가 송나라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요나라가 고려를 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려가 땅을 반납하고 조빙을 잘하면 용서해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이고, 요나라의 동경도 고려의 옛 땅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압록강은 고려의 영토이고, 여진이 그 땅을 점령하고 있어서 요나라와의 교류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진을 몰아내고 고려의 옛 영토를 돌려주면 조빙을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희의 담력있는 말에 소손녕은 당황했다.

 

소손녕은 고려의 저항을 깨닫고, 자신의 군사적 열세를 인정했다. 소손녕은 고려와의 화해를 제안하고, 고려에게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철회했다. 고려는 이에 동의하고, 거란에게 군사적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로써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와 거란의 화해로 끝났다.

 

전쟁의 영향: 고려와 거란,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와 거란,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는 거란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고구려의 후예로서의 자부심과 영광을 지켰다. 고려는 강동 6주를 획득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북방의 안전을 확보했다.

 

고려는 거란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거란의 문화와 기술을 수용했다. 고려는 거란과의 협력을 통해 송나라와의 교류를 계속했다.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 중세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란은 고려와의 전쟁에서 큰 손해를 보았지만, 고려를 사대국으로 만들었다. 거란은 고려의 친조를 받아 국위를 세웠다. 거란은 고려의 군사적 도움을 받아 송나라와의 전쟁에 유리한 입장을 갖게 되었다.

 

거란은 고려와의 화해를 통해 동아시아의 정세에 영향을 미쳤다. 거란은 고려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군사력과 외교력을 강화했다.

 

송나라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에 영향을 받았다.

 

송나라는 고려와 거란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을 우려했다. 송나라는 고려와 거란이 자신의 적대국인 당나라와 연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송나라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송나라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안보와 외교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 글에서는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고려와 거란은 동아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두 나라이다. 이 두 나라는 993년에 요나라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공한 것을 계기로 첫 번째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고려와 거란의 화해로 끝났다. 이 전쟁은 고려와 거란,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전쟁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상으로 고려와 거란의 대결: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과 과정 에 대해서 알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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