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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와 로마의 건국

다수정보 2024. 1. 29.

로마의 역사와 로마의 건국 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로마의 역사는 왕정 시기, 공화정 시기, 제정 시기, 그리고 중세 이후의 현대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건국은 기원전 753년으로 전해지며,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도시를 세웠다고 합니다. 로마는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도시로, 고대와 중세, 근대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와 로마의 건국

로마의 역사와 로마의 건국

 

로마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로마는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며, 서양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는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이며,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도 유명합니다. 로마는 영원한 도시라고 불리우며, 세계의 머리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글에서는 로마의 역사와 로마의 건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로마의 역사

로마의 역사는 크게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왕정 시기, 공화정 시기, 제정 시기, 그리고 중세 이후의 현대 시기입니다. 각 시기별로 로마의 변화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왕정 시기

왕정 시기는 로마의 건국으로부터 공화정이 성립하기까지의 시기입니다. 전통적으로 로마의 건국은 기원전 753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도시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로물루스는 로마의 첫 번째 왕이 되었으며, 그 후 일곱 명의 왕이 통치했다고 합니다. 왕들의 이름과 통치 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로물루스(Romulus): 기원전 753년 ~ 기원전 715년
  • 누마 포풀리우스(Numa Pompilius): 기원전 715년 ~ 기원전 673년
  •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기원전 673년 ~ 기원전 642년
  • 안쿠스 마르티우스(Anchus Marcius): 기원전 642년 ~ 기원전 617년
  •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 기원전 617년 ~ 기원전 579년
  • 세르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기원전 579년 ~ 기원전 535년
  • 타르퀴니우스 수퍼부스(Tarquinius Superbus): 기원전 535년 ~ 기원전 509년

 

왕정 시기의 로마는 라틴족, 에트루리아족, 사비니족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도시의 확장과 법률, 종교, 문화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명의 왕은 에트루리아 출신이었으며, 에트루리아 문화와 예술을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타르퀴니우스 수퍼부스는 폭정을 행하였고, 그의 아들이 루크레티아라는 귀족의 아내를 강간한 것을 계기로, 루크레티아의 남편과 부친, 그리고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루키우스 콜라티누스 등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으로 왕정은 폐지되었고, 공화정이 성립되었습니다.

 

 

공화정 시기

 

공화정 시기는 왕정이 폐지된 기원전 509년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기원전 44년까지의 시기입니다. 공화정 시기의 로마는 원로원과 두 명의 콘술이 주도하는 정치 체제를 갖추었으며, 군사적으로도 많은 전쟁과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공화정 시기의 주요 사건과 전쟁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494년: 플레브스의 반란. 민중의 권리를 요구하는 플레브스 계층이 도시를 떠나 자신들만의 의회와 장관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파트리키와 플레브스의 대립이 악화되었습니다.

 

기원전 450년: 12개 법판. 로마의 최초의 공표된 법률로, 공화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법률은 12개의 동판에 새겨져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기원전 390년: 알리아 전투. 갈리아인들이 로마를 침략하고 알리아 강에서 로마 군을 대파하였습니다. 로마는 갈리아인들에게 큰 댓가를 치르고 도시를 되찾았습니다.

 

기원전 264년 ~ 기원전 146년: 포에니 전쟁. 서양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로마가 세 차례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로마는 결국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지중해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133년 ~ 기원전 31년: 내전기. 로마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불균형과 부패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내전과 혼란의 시기입니다.

 

그라키 형제,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옥타비아누스가 마르코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파멸시킨 후에 제정을 선포하면서 끝났습니다.

 

 

제정 시기

 

제정 시기는 옥타비아누스가 제정을 선포한 기원전 27년부터 로마 제국이 서부와 동부로 분할되기 시작한 3세기 후반까지의 시기입니다. 제정 시기의 로마는 황제가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로마의 황금시대를 맞았습니다. 제정 시기의 주요 사건과 황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27년 ~ 기원후 14년: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통치.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로마의 첫 번째 황제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행정, 군사, 법률, 종교, 문화 등을 개혁하고,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파크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렸습니다.

 

기원후 14년 ~ 기원후 68년: 율리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의 채손이자 후계자인 티베리우스(Tiberius), 칼리구라(Caligula), 클라우디우스(Claudius), 네로(Nero) 등이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들 황제들은 대부분 폭정이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네로는 로마 대화재를 일으키고,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후 69년: 네 황제의 해. 네로가 자살하면서 율리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끝났고, 그 해에 갈바(Galba), 오토(Otho), 비텔리우스(Vitellius),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등 네 명의 황제가 연속적으로 즉위하고 폐위되었습니다. 이들 황제들은 각각의 군단의 지지를 받았으며, 내전을 벌였습니다.

 

기원후 69년 ~ 기원후 96년: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가 승리하면서 플라비우스 왕조가 성립되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두 아들인 티투스(Titus), 도미티아누스(Domitian)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들 황제들은 로마의 재정을 개선하고, 공공 건설을 활발히 하였습니다. 특히 콜로세움(Colosseum)과 티투스 환희기(Titus Arch) 등의 유명한 건축물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습니다.

 

기원후 96년 ~ 기원후 180년: 오케이우스 왕조.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면서 오케이우스 왕조가 성립되었습니다. 네르와(Nerva), 트라야누스(Trajan), 하드리아누스(Hadrian),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등이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들 황제들은 선출과 채용에 의한 후계자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로마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고,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는 오케이우스 왕조의 다섯 선지자라고 불리었습니다.

 

기원후 180년 ~ 기원후 284년: 로마의 위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 이후로 로마는 내외적인 문제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에서는 게르만족, 사르마티아족, 바르바리족, 사실리아족 등의 침입을 받았으며, 내부에서는 황제의 폭정, 군단의 반란, 경제의 붕괴,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26명의 황제가 즉위하였으나, 그 중 25명은 암살이나 전투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삼세기의 위기라고 불리었습니다.

 

기원후 284년 ~ 기원후 395년: 도미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의 개혁. 로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미티아누스(Diocletian)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가 황제가 되었고,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테트라르키(Tetrarchy)라는 네 명의 황제로 구성된 정치 체제를 도입하였으며, 로마 제국을 동서로 분할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새로운 수도로 선포하였습니다. 이들의 개혁은 로마 제국의 일시적인 회복을 가져왔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중세 이후의 현대 시기

 

중세 이후의 현대 시기는 로마 제국이 서부와 동부로 분할되기 시작한 3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로마는 다음과 같은 변화와 특징을 보였습니다.

 

4세기 ~ 5세기: 서로마 제국의 몰락.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침입과 내부의 분열로 인해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410년에는 비잔티움의 왕 알라릭이 로마를 점령하였으며, 455년에는 반달의 왕 게이세릭이 로마를 약탈하였습니다. 476년에는 게르만족의 수장 오도아커가 마지막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하고, 서로마 제국은 사라졌습니다.

 

6세기 ~ 8세기: 비잔티움의 복원과 교황의 성장. 동로마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로마의 문화와 제도를 계승하였습니다. 6세기에 저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를 정복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롱바르드족의 저항과 전염병의 창궐로 실패하였습니다. 8세기에는 프랑크 왕국의 카를로망이 이탈리아를 정복하였으며, 교황에게 로마와 근교의 영토를 수여하였습니다. 이로써 교황은 세속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9세기 ~ 14세기: 중세 로마의 발전과 위기. 이 시기의 로마는 교황의 지배와 시민의 자치가 병행되었습니다. 로마는 중세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성당과 궁전, 기념물을 건설하였습니다. 특히 바실리카 산 피에트로(Basilica of Saint Peter)는 기독교의 상징으로서, 교황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4세기에는 교황의 본거지가 아비뇽으로 옮겨지고, 로마는 쇠퇴하였습니다.

 

15세기 ~ 18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 15세기에 교황의 본거지가 다시 로마로 돌아오면서, 로마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로마는 다시 한번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로 변모하였으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라파엘로(Raphael), 베르니니(Bernini) 등의 거장들이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식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의 천장화와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의 건축물은 세계적인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19세기 ~ 20세기: 이탈리아 통일과 파시즘의 시대. 19세기에 이탈리아는 통일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으며, 1870년에 로마를 점령하였습니다. 이로써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는 파시스트 정권이 성립하였으며, 로마는 나치 독일의 점령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로마는 해방되었으나,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21세기: 현대 로마의 모습. 현재의 로마는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유럽의 중요한 도시입니다. 로마는 고대와 중세, 근대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많은 건축물과 유적이 있습니다. 로마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도시이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로마의 역사와 로마의 건국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로마는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도시로, 오랜 시간 동안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로마는 영원한 도시로서,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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