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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홍건적의 난: 원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과 고려의 위기

다수정보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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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홍건적의 난: 원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과 고려의 위기 에 대해서 살펴 봅니다. 

 

고려-홍건적의 난은 14세기 중반, 원나라의 통치가 약화되고 농민들이 일으킨 반란이 중국 대륙을 뒤흔든 사건입니다.

 

이 반란군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두르고 있어 홍건적이라고 불렸습니다. 홍건적은 원나라의 수도를 공격하고, 요동을 점령한 뒤, 고려로까지 침입했습니다.

 

고려는 홍건적의 침공에 맞서 싸웠지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홍건적의 난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고려-홍건적의 난: 원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과 고려의 위기

고려-홍건적의 난: 원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과 고려의 위기

 

홍건적의 난의 배경

 

홍건적의 난의 배경에는 원나라의 내부적인 혼란과 백련교의 종말론적 성격이 있습니다.

 

원나라는 13세기에 몽골 제국의 일부로 중국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서면서 몽골족 지배층의 분열과 한족 농민들의 저항으로 통치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특히 1344년에 황하의 수로가 바뀌는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전국에서 2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된 수로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사는 1년 만에 완성되었지만, 인부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습니다.

 

이들은 백련교라는 종교적인 이념을 품고, 원나라의 타도를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백련교는 미륵불이 내려와 중화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종교였습니다.

 

백련교도들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두르고, 송나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한산동과 그의 아들 한림아를 황제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국호를 송이라 하고, 연호를 용봉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홍건적이라 불리는 반란군이 탄생했습니다.

 

홍건적의 난의 전개

 

홍건적의 난은 1351년부터 1366년까지 약 15년간 계속되었습니다.

 

홍건적은 강남에서 시작하여 점차 북상하며 원나라의 수도와 요동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홍건적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 지도자와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주원장이었습니다. 주원장은 원래 홍건적의 한 지도자였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다른 반란자들을 통합하여 1368년에 명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주원장은 홍무제라는 이름으로 즉위하고,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했습니다. 홍건적의 난은 결국 명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졌습니다.

 

홍건적의 고려 침공

 

홍건적은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원나라의 반격과 내부 갈등으로 힘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홍건적은 고려로 침입하여 노략을 하기도 했습니다. 홍건적은 두 번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1차 침공

 

1차 침공은 1359년에 일어났습니다.

 

모거경이 이끈 홍건적 4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와 고려의 서북면을 공격했습니다. 의주, 정주, 인주, 철주 등의 주도를 함락시키고, 서경까지 점령했습니다. 고려는 병력을 모아서 서경 탈환을 시도했지만, 큰 희생을 치뤘습니다.

 

홍건적은 서경을 버리고 북쪽으로 퇴각했고, 고려군은 계속 추격하여 홍건적을 대부분 전멸시켰습니다. 1차 침공은 고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2차 침공

 

2차 침공은 1361년에 일어났습니다.

 

원나라의 대규모 토벌군에 밀려난 홍건적 20만 명이 다시 고려로 침입했습니다. 이때는 반성, 사류, 관선생, 주원수 등이 주요 지도자였습니다.

 

홍건적은 절령을 돌파하고, 개경에까지 다다랐습니다. 공민왕과 왕실은 남쪽의 복주로 피신했습니다. 홍건적은 개경을 함락시키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개경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곧 고려군의 반격을 받았습니다. 고려는 2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개경을 포위하고, 홍건적을 쫓아냈습니다. 홍건적은 압록강을 건너 도망갔지만, 고려군의 추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2차 침공은 고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홍건적의 난의 영향

 

홍건적의 난은 원나라의 몰락과 명나라의 건국을 촉진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홍건적의 난은 고려에게도 막대한 피해와 영향을 끼쳤습니다.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고려는 다음과 같은 변화와 위기를 겪었습니다.

 

  • 고려의 수도인 개경이 두 번이나 함락되었습니다. 홍건적은 개경을 점령하면서 궁궐과 공물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학대하고, 재산을 약탈했습니다. 공민왕과 왕실은 남쪽으로 피신하면서 국가의 권위와 지배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 고려의 군사력과 외교력이 손상되었습니다. 홍건적을 막기 위해 고려는 전국적으로 병력을 동원하고, 원나라와의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홍건적의 침입과 전투로 인해 많은 군사와 인력이 희생되었고, 원나라의 통치가 무너지면서 고려의 안보가 위태로워졌습니다.
  • 고려의 사회와 경제가 혼란되었습니다.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고려의 호적이 망실되고, 토지와 인구의 탈점이 널리 행해졌습니다. 신분제의 혼란과 농장의 발달이 촉진되었고, 권문세족의 세력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홍건적의 난을 계기로 김용의 난, 이성계의 난 등의 내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고려의 문화와 종교가 변화되었습니다. 홍건적의 난은 고려의 문화와 종교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고려의 문화재가 많이 파괴되었고, 중국의 문화와 종교가 유입되었습니다. 특히 백련교와 관련된 종교적인 사상과 행위가 고려에서도 보급되었습니다.

이상으로 고려-홍건적의 난: 원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과 고려의 위기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홍건적의 난은 원나라의 말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이었지만, 중국 뿐만 아니라 고려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홍건적의 난은 고려의 국력과 사회를 악화시키고, 고려 왕조의 멸망을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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